Round Here

꾀를 부리다 다친 일

이현봉 2007. 2. 5. 17:26

살다보면 낯 뜨거운 잘못을 할 경우가 있다.  잘 몰라서 할 경우도 있고 또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괜찮겠지 하며 하는 때도 있다.


15년 전 즈음, 그러니까 90년대 초에 내가 대학원 알고리즘을 들을 때 일이다.  중간고사가 끝난 후 조그만한 프로그램 구현 숙제가 나왔다.  당시 나는 한 주일에 몇 개의 논문을 보고 지도교수, 동료와 토론을 해야 했고 또 이빨까지 아파 치과에 다니느라고 왠만한 것이라면 가능한 편히 넘기고 싶은 심정이었다. 


숙제가 나왔을 때는 당연히 해야지 하고 마음 먹었지만, 더 중요한 것 때문에 뒤로 미루다 보니 어느새 내일이 제출일이었다. 그래서 낸 꾀가 지금은 저 아래 피대에 있는 후배것을 베끼는 것이었다.  그 때 내 생각은 숙제의 알고리즘이 단순하기에 서로 서로 비슷할 것이고 하니 조교가 뭐 그리 열심히 볼 까 하면서, 간단히 loop를 변경하고 변수명을 바꾸어 내면 될 것이다 싶어 그렇게 해서 내었다.  그런데 그것이 걸렸다.


후배에게 연락을 받고, 또 이 사실이 내 지도교수에게도 알려져 차를 몰고 학교에 갈 때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픈 마음이었다.  내 지도교수가 나를 자신의 학생으로 받아드릴 때 한 얘기중의 하나가 academic integrity 그러니까 학문적 정직성에 관한 것이었다.  그런데 내가 그것을 확실히 어긴 것이었다. 


왜 그랬는가 물을 때 변명이 있을 수가 없었다.  내가 꾀가 나서 한 것이었기에.  지도교수와 한 반시간즈음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.  그리고 지도교수님이 용서를 해 주었다.


결국 이 사건은 내가 과목을 듣던 교수님에게도 용서를 빌고, 또 마침 내가 중간시험과 그동안 숙제를 잘 했기 때문에 내가 잠깐의 유혹 에 빠진 것이지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과목 교수가 생각해 주어서 그냥 학점을 주지 않는 것으로 되었다.  그렇지만 또한 내가 박사과정 학생이기에 더 엄격한 잣대를 지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으니까, 다음에 이 과목을 다시 들어야 하고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literal로 한 단계 낮은 점수를 받게 될 것이라 하였다. 내가 다음에 톱을 하더라도 B+를 넘을 수가 없다는 의미였다.  이 모든 것이 약 2시간 정도 하면 되는 숙제 때문에 생긴 것이었다.  조금은 억울한 생각이 들었는데 대학원내내 그 어떤 학문적 정직성을 어긴 적이 없었는데 이 조그마한 것이 이런 일을 초래했다는 생각이었다. 


정말 다행스런 일이었다.  이보다 더 파렴치한 일을 저질렀으면 용서 받지 못했을 것이고, 또 만일 그 일이 발각되지 않았더라면 점차로 더 황당한 일도 내 편리한 대로 했을 지 모른다. 


다음해 나는 다시 그 과목을 들었고 B+를 받은 것 같다.  아직도 나는 가끔씩 그 때 꿈을 꾼다.  그리고, 내 지도교수가 나를 용서해 주었듯이 나도 비슷한 것을 한 친구가 있으면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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